공작나비

2010. 7. 24. 11:41나비&나방/네발나비과

헤르만 헤세 성장 단편소설"나비" 에 공작나방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에 옮겨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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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8 살이나 9 살 때 나비 수집을 시작했다.

10 살 때는 나비 수집에만 매달려 식사를 거를 정도였다.

부모님은 가난해서 채집 상자를 사줄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비를 낡은 종이 상자에 보관하였다.

병 마개 콜크를 잘라서 바닥에 붙이고 나비를 그 위에 핀으로 꽂거나

판자 조각 사이에 넣어서 보관하였다.

처음엔 내가 잡은 나비를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보여 주었지만,

다른 아이들은 더 좋은 수집 상자를 가지고 있다는것을 안 이후로는

창피해서 자랑도 못하고 겨우 누이에게만 보여주었다.

그런데 언젠가 한번은 오색나비를 잡아서 윗 집에 사는

한 선생의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 아이는 조그마한 채집판에 나비를 잘 간수하고 있었고, 또 손재주가 있어서

파손된 나비도 감쪽 같이 수선해 놓았다. 그는 게다가 모범소년 이었다.

나는 반쯤은 그를 시기했고, 반쯤은 그를 존경하고 있었다.

나는 어느날 내가 잡은 그 오색나비를 그에게 보여주었는데,그는 마치 전문가라도

되는것처럼, 나비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만,

내 나비가 20 페니히 정도 나간다고 하였다.

그는 늘 나비를 값으로 따져 좋고 나쁜것을 판별했다.

제법 값진 나비를 잡았다고 하면서도

그는 내 나비에 대해서 흠을 잡았다. 나비가 잘못 펼쳐졌다든지,

다리가 2 개나 없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자 나의 기분은 영 엉망이 되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나는 절대로 내가 잡은 나비를 그 아이에게 보여주지 않게 되었다.

2 년쯤 지나서 친구들 사이에 에밀이라는 그 녀석이

공작나방을 잡았다는 소문이 들렸다.

우리 친구들이 그토록 잡고 싶어하던, 오직 나비 도감에만 들어 있는

바로 그 공작나방을 그가 잡았다는 것이다.

이 나비가 하필이면 에밀의 손에 들어갔을까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일어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은근히 시기심이 생겼다.

그 녀석에게 가서 그 나비를 보여달라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바보 같은 나의 모습과 영웅 같이 우쭐하는 그 녀석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궁금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나는 식사시간이 끝나자

그의 집 4층으로 올라갔다.

거기에는 그의 방이 있었다. 그는 늘 방문을 잠그고 다녔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그 날을 문이 열려 있었다. 처음에는 나비를 보기만 하고 얼른 나오려고 했다.

그 나비는 고고한 자태를 하고 전시판 위에 놓여 있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황홀한 기분에 사로 잡혀서 멍하니 한참 서 있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종이판을 걷어 내고 핀을 빼내었다.

갑자기 나비가 갖고 싶은 욕망이 생겨서 나비를 오른 손에 움켜쥐고 방을 나왔다.

도둑질이라는 것을 처음해 보았다. 아래 쪽에서 누가 오는 소리가 났다.

나는 들킬 것이 두려워 엉겁결에 훔친 나비를 윗 옷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하녀였다.

양심의 가책이 일어났다.

그것을 가져서는 안되고 다시 갖다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났다.

나는 다시 그의 방으로 가서 주머니에 있던 나비를 꺼냈다.

그러나 그 공작나비는 무참히 부셔져 있었다. 오른쪽 앞 날개와 더듬이가 떨어져 나갔다.

너무나 나비가 아까웠다. 그토록 아름다운 나비가 망가졌다니!

도둑질을 했다는 양심의 가책만큼이나 망가진 나비가 아까웠다.

슬픈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서는 오후 내내 집 앞 정원에 앉아 있었다가 어두워져서

겨우 어머니에게 갔다. 나는 모든 것을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나의 말을듣고 내가 직접 다시가서 나비를 훔친 사실을 말하고

용서를 빌라고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용서를 안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내가 가진 물건 중에서 귀한 것으로 보상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에밀 집으로 갔다. 아래 층에서 그를 만났다.

에밀은 슬픈 얼굴을 하고 어떤 나쁜 녀석이나 고양이가 그가 아끼는 공작나방을

망가뜨려 놓았다고 말하였다. 나는 그 나비를 보여달라고 말하고

그를 따라 그의 방으로 갔다.

촛불속에 비친 공작나방의 모습은 초라했다.

에밀이 그것을 고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바로 '나'라고 했다.

그러나 에밀은 오히려 나를 경멸할 뿐이었다.

나는 내가 갖고 있는 것 중에서 무엇이든지 그에게 주겠다고 말하였다.

내가 수집한 나비를 모두 주겠다고까지 말하였다.

그러나 그는 "고맙지만, 네가 수집한 것을 나는 다 알고 있어.

네가 나비를 어떻게 다루는지 오늘 확인까지 했어!"

라고 말하며 비아냥거렸다. 그 순간 그를 움켜잡고 싶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어서

단지 그의 경멸의 시선을 느끼며 그의 앞에 서 있어야만 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한번 망가진 것은 다시 잘 만들어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집으로 돌아가자 어머니는 더 이상 나비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용서의 키스를 해주었다.

나는 자기 전에 갈색 나비 상자를 침대로 가져와서

어둠 속에서 나비들을 하나씩 꺼내어 손가락으로 비벼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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